SF 전문 출판사 허블에서 한국과학문학상 10주년을 기념하여 수상 작가 다섯 명과 함께 SF 앤솔러지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를 선보인다. 서로 의견을 나누지 않았음에도 작가들이 “죽음”, “사랑”을 공통 주제로 쓰게 된 이유는 작가노트에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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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 한국과학문학상 대표작가 앤솔러지 내용 요약
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 한국과학문학상 대표작가 앤솔러지는 한국과학문학상 10주년을 기념해 SF 전문 출판사 허블에서 출간한 단편 소설 모음집으로, 김초엽, 천선란, 김혜윤, 청예, 조서월 등 다섯 명의 수상 작가가 참여했다. 🌌 이 책은 각 작가가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라는 주제 아래 “죽음 너머의 세계”와 “그곳에 남은 사랑”을 공통 테마로 한 다섯 편의 SF 단편을 담고 있다. 한국 SF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이 작품들은 과학
그때도 지금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제 외로움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어 있었지요.(40)
쓸모를 증명하라고 말하는 세계에 저항하려고.(78)
군인은 주변을 살피다가 저 멀리 홀로 뛰어갔다. 그 뒷모습이 바빠 보여서 눈물이 났다. 갈 곳도, 저렇게 바쁘게 가야 할 이유도 없을 텐데 열심히 뛰는 뒷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고 치자.(155)
사람들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지. 장풍이가 바다로 돌아갔듯이, 결국에는. 하지만 나는 복수를 아는 인간이다. 그러니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대들. 당신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이제 이 행성에는 우리뿐입니다.(160)
이해와 환희는 찰나다. 그것은 종착이 아니라 시작이며, 이후로 길고 지난한 작업이 이어지기 마련이다.(173)
그건 신호였다. 그리고 신호의 수신자들은 그걸 아주 잘 알아들었다.(189)
하지만 이 마음을 설명할 낱말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201)
유전적 변이는 진화의 서막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질환의 시작이다(중략)일반성에서 벗어난 변화(예컨대 지나친 사교성과 무차별적인 친화력)는 종종 의학적 이상으로 정의된다.(217)
타인에게 상처 주는 순간은 내 안에 뿌리내린 폭력성을 들키는 일. 비뚤어진 공격성이야말로 내가 겪은 수모를 인정하는 일이라, 결국 내 몫의 존엄을 해치는 것임을 알면서도 체벌을 멈추지 못했다.(240)
진리는 이처럼 명쾌하여 누구에게나 통용된다. 조건을 덧붙이고 감상을 첨가할수록 명제는 절대성이 아닌 불확실성으로 치우친다. 복잡한 명제들은 거짓의 가능성을 증폭시킬 뿐 순수한 거짓에도 닿지 못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불순함투성이가 된다. 끝내 쾌에서 멀어진다. 그저 오류로 전락해 버린 마음들을 우리는 때때로 사랑이라 믿고 산다.(250)
이것은 관념 속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보편적 실재를 지시한다. 왜곡된 사랑을 그릇되었다 판단하는 기준이 이미 내 안에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비록 내거 그것을 수행하지 못할지라도.(253)
랜슬롯이 다칠 때마다 프랭크는 그를 수리해 주지만, 프랭크가 다칠 때마다 랜슬롯은 치료할 수 없는 상처가 축적되어 간다. 그는 로봇이 아닌 것이다.(294)
비구름을 따라서(김초엽)
음... 글을 읽을 때도 애매했는데, 작가 노트를 읽어도 애매하다. 사건의 개연성도, 인물의 심리 묘사도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뭔가 작가가 글을 쓸 때 좀 망설이며 썼나 싶은 느낌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으나 명쾌하지는 않다.
우리를 아십니까(천선란)
유명한 작가여서 기대가 있었다. 몇몇 작품을 대출하려 하는데 매번 인기가 많아 이번 단편으로 처음 접해봤다. 정말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싶다. 소외와 고독, 이별, 죽음과 이것들을 빗겨 지나가는 유대, 교류와 삶의 한 끗을 유연히도 읊어간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담담힌 화자의 독백같은 서술과 녹음기에서 나오는 아내의 독백. 두 인물의 상호작용하는 대화는 아주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두 독백이 나란히 진행된다. 그런데 그게 참 대화같다. 마주하듯 이어지는 서술들에서 디정함이 느껴져서 좋다. 두 인물이 마음껏 다정하라고 내려 앉은 아포칼립스.
가장 좋았던 것은 유머러스함이다. 글을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다니. 스토리며, 플롯이며, 필력이며 모두 다 너무 좋았다.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오름의 말들(김혜윤)
메시지가 분명한 글이다.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너무 투명해서 부끄럽다고, 이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자문했다. 난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겹으로 쌓여 어려운 해석이 필요한 것이 소설의 필수 요소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쉽다기 보다는 그냥 솔직한 글이라고 여겨진다.
소통과 불통. 교류와 단절. 이해와 오해. 공존과 대립.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 글을 읽으면서 나는 희정이었다가 류였다가 오름이었다가, 때때로는 군인이었다가 언론이었다가 대중이었다. 이 투명한 글을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다. 주체로든 객체로든 매순간 싸움에 있었으면서 나는 자각조차 못했다. 나는 내 생각과 입장을 표현할 말을 가지고 있던가. 아니, 내 생각과 입장이 있던가. 나의 말을 고민해보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
아모 에르고 숨(청예)
정말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이렇게 스토리를 끌고 가다니 정말 놀랍다.
화자인 오필리아는 의도적으로 극 초반에 아주 불편할 정도로 강한 어조로 말한다. 그래서 더욱 몰입감이 높아진다. 사람이란 늘 반박하고 싶어지는 욕구를 가지니까. 그렇게 스토리를 꾹꾹 눌러가며 따라가다보면 완벽한 종착점에 도착한다.
일부 반전은 예고되어 있었다. “행동과 경험에 의거한 확신은 불안정하다”(220)라던 오필리아는 곧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존재의 이해를 나는 수용할 수 없다”(237)며 자기 모순적 발언을 한다. 여기에 더해 처음에는 인격체는 물론 아예 생명도 아닌 그조 나를 비추는 거울 정도로 실비아를 인식했다. 그런데 실비아를 테라스로 내몰았을 때 실비아는 오필리아의 ‘타인’이 되어 오필리아의 공격성을 들키게하는 존재였다.
결정적으로 실비아는 등장한 이래로 줄곧 객체이지만 이름으로 불리었고, 주체로 있던 오필리아는 그저 “모체”로 스스로를 칭하며 명칭의 주객이 전도되었다. 사실 실비아가 남으리라는 것은 어렴풋하게 알았으나 방식까지는 생각 못했다.
청예의 글은 늘 인간의 비인간성을 논하는 것 같다. 언제나 철학적이다. 그 논함에 나는 어떤 말을 보탤 수 있나. 매번 작은 티끌로 거대한 눈덩이를 만들어내는 글이 감탄스럽다.
I'm Not a Robot(조서월)
약간 고전 느낌이 나는 문체다.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여서 내용과 주제를 느끼기에는 실패했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자면, 존중, 일, 이름, 사람 그리고 로봇. 이 단편은 이 책들 중 가장 sf가 아닌 소설 같다. 쉼없이 로봇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나, 소설의 주제가 명확히 다가오지 않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분명한 건 사람 사이에 있으라는 랜슬롯과 함께여서 프랭크는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단편집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꺼리지는 않지만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내게, 단편집의 매력을 처음 알려준 책이다. ‘자, 다섯 가지의 알록달록 사탕이 있어. 어때?’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어떤 사탕은 완벽히 내 입맛에 쏙 들고, 어떤 맛은 조금 아쉽다. 그래도 알록달록 모여있는, 예쁘고 손이 가는 사탕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섯 개의 소설은 비현실성을 토대로 현실을 심어둔다. 비현실성에 마음 놓고 보다가 자꾸만 현실이 스쳐지나가고 어느덧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비현실성과 현실의 간극이 오히려 질문의 중요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SF의 매력이다.
좋은 작가들, 좋은 글을 만나 반가웠던 책.
281p
••• 난롯불에 비친 노인의 그림자가 그의 앙상한 몸 뒤편에 드리워 일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거실 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어 모습을 감췄다가 별안간 높다랗게 솟아올라 천장을 뒤덮었고, 처음엔 프랭크의 형체를 닮았는가 했지만 다시 봤을 때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모습인가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직 종이에 쓰이지 않고 언어로 옮겨질 차례를 기다리는 검은 잉크병 속 미지의 존재들인 듯했다. _<I'm Not a Rob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