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1급 작가 투르니에가 만년에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사제관에서 홀로 살면서 쓴 글모음. 집, 도시들, 육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8개의 장으로 나누어 짧은 산문들을 싣고 있다. 그의 산문은 인간과 사물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명한 이미지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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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짧은 글 긴 침묵 (미셸 투르니에 산문집) 내용 요약 📖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은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 일상과 예술,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통하는 통찰을 담아낸 귀한 기록물입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짧고 간결한 문장들 사이에 독자가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긴 침묵의 공간을 마련해 둡니다. 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견해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주변의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며 삶의 이면에 숨겨진 철학적 진실을 길어 올립
<육체. 늙는다는 것.>
겨울을 위하여 선반에 얹어둔 두 개의 사과.
한 개는 퉁퉁 불어서 썩는다.
다른 한 개는 말라서 쪼그라든다.
가능하다면 단단하고 가벼운
후자의 늙음을 택하라.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트루니에
***
사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암으로 인한 더러운 죽음과
심장으로 인한 깨끗한 죽음 말이다.'
삶의 이면에는 죽음이, 죽음의 이면에는
삶이 서로 작용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
하는 것이다.
바냔나무. 인도에서 목격한 광경.
새 한 마리가 종려나무 위에 앉는다.
새가 싼 똥이 나무 둥치 아래 떨어진다.
그 속에 바냔 씨 한 알이 들어 있다.
새똥 덕분에 비옥해진 땅에 씨앗은 싹이 튼다.
바냔 싹이 자라 종려나무를 감는다.
거기에 두번째 싹, 그리고 세번째 싹, 이렇게
여러 개의 싹이 차례로 돋아나 합세하여 종려
나무를 감아 올라간다.
마치 여러 개의 점점 더 억세어지는 손가락을
가진 손처럼, 땅에서 솟아난 어린 바냔나무가
종려나무를 모질게 휘감아 뿌리를 뽑아 올린다.
뿌리뽑힌 종려나무는 바냔나무에 쳐들려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종려나무는 때로는 땅에서 몇 미터씩
쳐들린 채 나뭇가지들의 감옥 속에서 계속하여
생명을 부지한다.
짧은 글 긴 침묵 / 미셸 트루니에
이 책의 글들은 모두 다 씹고 소화하여 입에 넣어주어야 받아먹는 안이하고 게으른 독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산문집은 집, 도시들, 육체, 아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각기 길이가 다른8개의 장 속에 짤막한 텍스트들로 묶여 분류되어 있다.
그의 산문은 방만한 수필이 아니다. 그것은 등푸른 생선이다. 구워서 밥상에 올려놓은 생선이 아니라 이제 막 아침빛을 받으며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생선이다.
--- <김화영> ---
프랑스의 지성 미셀 투르니에는 <외면일기>를 통해서 처음 마주했구요. 그 산문집을 읽어 가면서 저는 그의 맛있는 생각과 불꽃놀이처럼 빵빵 터지는 기발함에 흠뻑 젖었었죠.
이 책 "역시" 현상과 자연에 관한 통찰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문장을 보고 있어도 미끄러지는 느낌, 절대로 안이하고 게으른 독서를 용납하지 않듯이...
그래도 꿋꿋하게 읽어서, 통찰과 깨달음을 얻었네요.
<책속의 한줄들>
어젯밤은 잘 잤다. 나의 불행도 잠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불행은 침대 밑 깔개 위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낸 것 같다. 나는 그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다. 나는 세상의 첫 아침을 향하여 눈을 뜬 최초의 인간이었다. 이윽고 나의 불행도 덩달아 잠이 깼다. 그리고 내게 달려들어 간을 꽉 깨물었다. -- P. 33
두뇌. 신경조직을 갖춘 인간이 거꾸로 세워놓은 나무와 같다는 것을 가장 먼저 지적한 것은 아마도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자들이었던 것 같다. 뇌는 그 나무의 구근(알뿌리) 모양을 한 뿌리에 해당되고 척추는 그 나무기둥으로서 거기서 부터 수많은 가지들이 뻗어나가고 또 그 가지들은 무수한 잔가지들과 섬유들로 갈라진다. -- P. 112
엉덩이에 대한 예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조물주가 무슨 변덕을 부려서 인간이 가진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부드럽고 피동적이고 맹목적인 만큼 푸짐하게 믿기 잘하는 모든 것, 매질을 당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만이 본분인 그 모든 것이 와서 숨어 있는 이 둥근 구릉을 남자와 여자에게서 박탈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질 지경이다. -- P. 119
사람들은 사마귀가 교미중에 수컷을 잡아먹는 것은 그 엄청난 식욕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에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은 수컷의 뇌가 정자의 사정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암놈이 수태하고자 할 경우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정 억제 상태인 그 불쌍한 수놈의 골통을 이빨로 으스러뜨려서 아주 자유롭게 사정을 하게 만드는 길뿐이다. 성적 불능의 근본적 치료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P. 136
우리 문명은 작은 고민들 중 한 가지는 차바퀴와 발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요구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바퀴는 고른 평면과 고무로 만든 트렉 같은 접착성을 원한다. 그것은 푹푹 빠지거나 덜커덕거리거나 특히 미끄러지는 것이라면 아주 질색을 한다. 반면에 발은 그런 것에 잘 적응할 뿐만 아니라 미끄러지는 것을 재미있어 할 줄도 안다. 그러나 발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모래나 자갈이 살짝 덮인 바닥을 소리내어 밟으면서 마치 양탄자 위를 걷듯이 약간씩 (너무 지나치지 않게) 빠지는 것이다. 발은 탄력 없이 단단하기만 한 표면에 닿아 아프게 튀어오르기를 원치 않는다. 해가 날때 일어나는 약간의 먼지, 비 올 때 생기는 약간의 진창(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도 삶의 질의 일부인 것이다. -- P. 244
사계절은 우리의 고통이며 우리의 구원이다. 나쁜 계절, 비, 추위, 어둠, 그리고 안개. 그러나 쟁기로 갈아 엎은 땅은 계속적인 비옥함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진 서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가봉에 가서 체류한 다음 -- 그곳은 일 년 열두 달 내내 할결같이 후끈한 열기 속에 잠겨 있고 나무는 제각기 다른 나무들과는 별도로 저마다의 리듬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며, 일 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시각에 해가 뜨고 진다. -- 다시 돌아오면 우리는 비록 고된 면이 없지 않지만 사계절이라는 거대한 시계의 질서를 귀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 P. 250
나는 한 권의 책에는 늘 그 책을 쓴 이와 그것을 읽는 이, 이렇게 두 사람의 저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씌어지기만 했을 뿐 읽혀지지 않는 책은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 잠재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땅의 오목한 한구석에 내려앉아 마침내 진정한 존재, 다시 말해서 잎과 꽃과 열매로 변할 때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바람 부는 대로 끝없이 날아다니는 날개 달린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 P. 257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며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다! 단어들을 손으로 만져보고, 은유들을 쓰다듬어보고, 구두점들을 문질러보고, 동사들의 맥을 짚어보고, 형용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들어 보고, 한 문장 전체를 애무해본다는 것은 - - - - - 얼마나 공감이 가는 행동인가! 한 권의 책이 마치 내 무릎 위에 엎드려서 가르릉거리는, 그래서 내가 주의 깊은 애정을 다하여 두 손으로 쓰다듬게 되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와 흡사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얼마나 큰 공감을 갖는가! -- P.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