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답답할 때, 인생이 재미 없을 때,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감동#비극#사랑#폭력
분량두꺼운 책
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5-03-15
페이지572쪽
10%13,000원
11,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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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5-03-15
페이지5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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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5-03-15
페이지572쪽
요약
독서 가이드
1. 이 책은 20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2.글쓰기에 관심이 많을 때 읽으면 도움이 돼요.
3.천천히 긴 호흡으로 읽으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분량이에요.
작가
에밀리 브론테
(지은이)
김종길
(옮긴이)
상세 정보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가 죽기 1년 전에 발표한 유일한 소설. '워더링 하이츠'를 무대로 펼쳐지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인 사랑, 에드거와 이사벨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잔인한 복수를 그린 이 작품은, 발표 당시 그 음산함과 등장인물의 야만성으로 인해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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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폭풍의 언덕 내용 요약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로, 19세기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황무지를 배경으로 사랑, 복수, 그리고 파괴적인 열정을 그린 고전이다. 이야기는 락우드라는 신사가 폭풍의 언덕이라는 외딴 저택을 방문하며 시작된다. 그는 집주인 히스클리프와 그곳에 얽힌 기묘한 가족을 만나고, 호기심에 사로잡혀 가정부 넬리 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 넬리는 폭풍의 언덕과 인근 스러시크로스 농원의 두 가문, 언쇼 가와 린튼 가의 비극적인 운명을 들려준다.
폭풍의 언덕은 요크셔의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배경 자체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 같았다. 언쇼가에 거두어진 정체 모를 고아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함께 자라면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 집 안의 규칙이나 어른들의 폭력에서 벗어나 벌판을 함께 달리던 두 사람의 유대는, 사랑이라기보다 하나의 영혼이 둘로 나뉘어 있다가 겨우 서로를 알아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그 야생성이 순수한 낭만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걸 이 소설은 처음부터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캐서린이 사회적 안정을 위해 에드거와 결혼하기로 하면서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와 결혼하면 둘 다 추락할 거라 여겨 다른 선택을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데 그 선택이 결국 둘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히스클리프는 그 배신을 목격하고 집을 떠났다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이때부터 소설은 사랑 이야기에서 서서히 복수극으로 방향을 튼다.
히스클리프의 복수가 무서운 건, 그게 한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지독하게 치밀하고 오래 지속되는 계산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를 도박과 술로 서서히 무너뜨리고, 에드거의 사회적 지위를 빼앗으려 하고, 심지어 다음 세대인 헤어턴과 어린 캐시에게까지 자신이 겪었던 학대와 추락을 그대로 되물림시키려 한다. 빚이 쌓이는 걸 지켜보고, 누가 병들고 누가 외로운지를 계산하면서 서서히 옥죄어오는 그 방식이 오히려 순간적인 분노보다 훨씬 소름 끼쳤다. 사랑을 잃은 상처가 이렇게까지 정교하고 냉혹한 복수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보면서, 사랑과 증오가 사실은 한 뿌리에서 나온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서린이 죽고 난 뒤에도 히스클리프는 평생 그녀의 유령을 곁에 두려 하고, 결국 자기도 서서히 무너져간다. 식사를 거부하고 사람들을 피하면서 기이한 광기와 희열 사이를 오가는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이건 복수에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사랑을 완전히 놓지 못해서 스스로를 갉아먹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허황한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라고 되뇌는 그의 독백을 읽으면서, 결국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빼앗겼다는 그 상처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무거웠던 건,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는 힘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괴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너무 파괴적이었고, 그렇다고 그저 병적이라고만 하기엔 그 안에 진짜 절절함이 있었다. 사랑이 집착으로, 상처가 복수로 변해가는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얇다는 걸 이 소설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언제부턴가 나를 갉아먹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느껴본 적이 있다. 처음엔 분명 그 사람을 향한 순수한 애정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서운함으로, 서운함이 다시 집착 비슷한 감정으로 변해가는 걸 스스로도 눈치채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그게 다 사랑이라서 그런 거라고, 이만큼 마음을 쏟았으니 당연한 거라고 합리화했던 것 같다. 근데 지나고 보면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그 사람을 향한 상처와 결핍이 만들어낸 다른 얼굴이었다. 히스클리프를 보면서 그 시절의 내가 자꾸 겹쳐 보였다. 그도 처음엔 그냥 사랑이었을 텐데, 그 사랑이 배신당했다고 느낀 순간부터 서서히 다른 걸로 변질돼서, 나중엔 사랑을 지키려는 건지 그냥 상처를 되갚으려는 건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사랑이 얼마나 쉽게 자기 파괴적인 감정으로 뒤바뀔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몸소 겪어봤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다행히 히스클리프처럼 끝까지 그 감정에 잠식되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방향이 틀어졌다면 나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