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은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적인 로맨스 소설로, 19세기 초 영국 시골을 배경으로 사랑, 계급, 그리고 인간관계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는 베넷 가문의 다섯 자매와 그들의 결혼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리지는 약칭)은 둘째 딸로, 지적이고 독립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녀의 어머니 베넷 부인은 딸들을 부유한 남자와 결혼시켜 가문의 재정난을 해결하려 애쓴다 💍. 아버지 베넷 씨는 아내의 과한 열정에 비판적이지만, 딸들에게 애정 어린 유머를 보여준다.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줄거리보다 제목 그 자체 때문이었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소설 안에 이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다아시의 오만이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동시에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그녀 스스로 다아시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 소설의 구조를 이보다 정확하게 요약하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사랑을 가로막는 게 상대방이 아니라 언제나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계속 따라다녔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처음 오만한 사람으로 단정 짓게 된 건 무도회에서 우연히 엿들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 순간부터 그녀는 다아시가 이후에 뭘 하든 그 첫인상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만 그를 읽는다. 나는 이 부분이 제일 무서웠다. 엘리자베스는 결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소설 안에서 가장 눈치 빠르고 재치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그런 사람조차 한번 굳어진 인상 앞에서는 판단력이 무뎌진다. 그러니 편견이라는 게 어리숙한 사람만 걸리는 함정이 아니라, 오히려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판단력을 믿는 사람일수록 그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데 인색해지니까.
이 지점에서 나도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누군가에 대해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나면, 그 판단이 맞았다는 걸 확인해주는 정보만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 판단과 어긋나는 모습은 그냥 예외겠거니 하고 넘겨버리게 된다. 스스로 관찰력이 좋다고 믿을수록 오히려 그 첫인상을 더 강하게 확신해버리는 역설이 있는데, 그 확신이 결국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가려버리는 거 같다.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람을 잘 읽는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 자부심이 오히려 다아시라는 사람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걸 막아섰다. 편견이 무서운 건 사람을 아예 못 보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어느 한 단면만 계속 확대해서 보여주고 나머지는 슬그머니 지워버린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지워진 자리에 남는 건 결국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미 정해놓고 있던 상이었다. 결국 통찰력이라는 게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편견을 더 정교하고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 인물을 통해서 알게 됐다.
다아시의 첫 번째 청혼 장면도 인상 깊었다.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그는 상대 집안의 낮은 신분과 천박한 인맥을 굳이 언급하며, 자기가 이 청혼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했는지를 강조한다. 사랑 고백이라는 게 원래 상대를 높이는 말이어야 할 텐데, 여기서는 오히려 상대를 낮추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아이러니 안에 다아시라는 사람의 오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당연히 그 청혼을 거절하면서, 그동안 쌓아뒀던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쏟아낸다. 다아시가 언니 제인과 빙리 사이를 갈라놓았다는 것, 위컴이라는 남자에게 부당하게 굴었다는 소문까지 근거 삼아 그를 몰아붙인다. 다아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비난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반박하는 대신, 다음 날 편지 한 장을 남긴다. 그 편지에는 위컴이 사실 자기 여동생을 유혹하려 했던 인물이라는 것, 빙리와 제인 사이를 갈라놓은 데도 진심 어린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조목조목 담겨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성급하게, 얼마나 자기 확신에 차서 그를 판단해왔는지를 그제야 깨닫는다.
이 소설이 유독 좋았던 건, 그 변화가 엘리자베스 혼자만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엘리자베스가 편견을 걷어내는 동안, 다아시 역시 자기 오만을 조용히 내려놓고 있었다. 그는 리디아 사건을 뒤에서 아무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해결해주고, 나중에는 첫 청혼에서 보였던 무례함과 허영심을 직접 사과한다. 한 명이 변하고 한 명은 그저 그걸 지켜보는 게 아니라, 둘 다 같은 시간 위에서 각자 자기 안의 걸림돌을 걷어내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오만과 편견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진 뒤에야,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사랑이라는 게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살면서 누군가에 대한 첫인상 하나로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한 번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나면, 그 이후로는 아무리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예전의 그 인상 안에서만 상대를 해석하게 된다. 엘리자베스처럼 통찰력 있는 사람도 그 함정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게, 오히려 나한테는 위안이 됐다.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그걸 붙잡고 있다가도 다시 들여다보고 고쳐나가는 태도가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
다아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진짜로 달라진 건 더 좋은 조건을 갖춰서가 아니라, 자기 안의 오만을 스스로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을 더 내세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려 했을 때, 비로소 그 사랑이 가능해졌다. 결국 이 소설의 제목이 말하는 그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 건 대개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쥐고 있는 그 오만과 편견이었다.
원래 연예소설 잘 안보는데 고전이라고 해서 200년전 연예소설도 보게 되네
오만덩어리 다아시와 편견덩어리 엘리자베스의 신데렐라 이야기 비스무리하네~
갑부의 왕자님 역활의 오만의 다아시와 평범한 집안의 편견의 엘리자베스가 오만과 편견을 벗어 던지고 나니 하트가 뿅뿅하고 해피엔딩이다.~~~~~이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