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의 임무를 띄고 14세기 중세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 잠입한 영국의 수도사 윌리엄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 봉건제의 어둠 속에서 근대정신이 희미하게 비춰지던 14세기의 철학, 풍습, 문화, 건축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배경으로 근대의 산물인 합리적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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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내용 요약
『장미의 이름 세트』(원제: The Name of the Rose)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1980년에 출간하고, 2006년 4월 15일 열린책들에서 이윤기 번역으로 출간된 지적 추리소설로, 약 784쪽 분량의 2권 세트이다(ISBN: 9788932906744). 20세기 최고의 기호학자이자 철학자인 에코의 데뷔 소설로, “진실은 금지된 지식 속에 숨겨져 있다”는 메시지를 통해, 1327년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중세 신학, 철학, 과학, 그리
장미의 이름은 겉으로 보면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1327년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윌리엄과 그의 견습 수도사 아드소가,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수도사들의 의문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근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느낀 건, 이게 단순한 추리물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훨씬 크고 무거운 질문을 깔고 있다는 거였다.
사건의 발단은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 2권, 그러니까 희극과 웃음을 다룬 책 한 권이었다. 수도원의 눈먼 전직 사서 호르헤 수도사는 웃음이라는 걸 신을 향한 경외심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 신을 섬기는 수도원에는 근엄함과 두려움만 있어야 하는데, 웃음이라는 게 그 권위에 균열을 낸다고 믿는 거다. 그래서 그는 이 책 한 권을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그 책에 접근하려는 수도사들을 하나둘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처음엔 왜 책 한 권 때문에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이나 싶었는데, 읽다 보니 호르헤한테는 그게 단순한 책이 아니라 자기가 평생 지켜온 세계관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협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마지막에 호르헤는 자기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그 책을 손에 쥔 채로, 서고 전체를 불태우며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그가 태운 게 단지 책 한 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불태운 서고에는 인류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필사하고 번역하고 지켜온 온갖 지식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 그 책들을 옮겨 적었을 거고, 누군가는 그 지식을 후대에 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험한 길을 오가며 필사본을 실어 날랐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과 정성이, 단 한 사람이 웃음이라는 감정 하나를 두려워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 대목에서 지식이라는 게 얼마나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 건지, 그리고 그 지식을 지키고 없애는 힘이 결국 한 개인의 편협한 확신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는 게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다가왔다.
더 무서웠던 건, 호르헤가 그 순간까지도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악마가 되려고 그 불을 지른 게 아니라, 오히려 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가 믿는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진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었던 거다. 자기 확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단 한 번도 열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살인도, 방화도, 자기 죽음까지도 정당한 대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신념이라는 게 그 자체로는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 무엇을 믿느냐보다, 그 믿음 앞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의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나도 살면서 뭔가를 지나치게 확신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맞다고 믿는 순간,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사람의 입장은 잘 들리지 않게 되는 경험. 물론 호르헤처럼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확신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다는 걸 느낄 때가 있었다. 어떤 원칙이나 신념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정작 다른 사람의 말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순간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조금씩 호르헤처럼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장면을 읽으면서 스쳐 지나갔다. 결국 이 소설이 말하려던 건, 지식이나 신념 그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라, 그걸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그러니까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순간이 진짜 위험하다는 거였다. 나는 지금 뭘 그렇게까지 의심 없이 믿고 있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다른 목소리를 얼마나 지워버리고 있는지를 이 책을 덮고 나서 곱씹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