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재미 없을 때, 동기부여가 필요할 때, 일상의 재미를 원할 때, 힐링이 필요할 때 읽으면 좋아요.
#감동#강철멘탈#멘탈갑#민폐#예술혼#위로#책임#타히티#폴고갱
분량보통인 책
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0-06-20
페이지328쪽
10%10,000원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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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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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미소설
출간일2000-06-20
페이지328쪽
요약
독서 가이드
1. 이 책은 20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에요.
2.인생이 재미 없을 때일 때 읽으면 도움이 돼요.
3.차 한 잔과 함께 한 호흡으로 즐기기 좋은 딱 알맞은 분량이에요.
작가
서머싯 몸
(지은이)
송무
(옮긴이)
상세 정보
<달과 6펜스>는 15종에 이르는 번역본이 이미 소개되어 있을 만큼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머싯 몸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결정적인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출판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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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달과 6펜스 내용 요약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안정된 삶을 버리고 예술을 향한 열망을 좇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런던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중년 남성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스트릭랜드는 40대 증권 중개인으로, 아내 에이미와 두 아이와 함께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산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가족과 직장을 갑작스레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에이미는 그가 다른 여자와 도망쳤다고 믿고 화자에게 그의 행방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화자
예술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라 그런지 표현력 자체에 정말 감탄했다. 사실 보는 내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꽤 있었다. 이를테면 중반부에 스트릭랜드가 화자의 집을 둘러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안에서 고뇌하는 영혼이 보였다고 묘사하는 대목 같은 것들. 그 표현들을 완전히 소화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읽으면서 스트릭랜드가 추구하는 예술혼이 어떤 것인지는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팔 수 있을 만큼 거기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가족을 버리고 가난을 택하면서까지 파리로 떠났던 거였다. 처음엔 이 무모한 행동이 이해가 안 갔는데, 점점 공감하게 됐다. 나도 뭔가에 하나 깊이 몰입하려 할 때면, 가끔은 연락을 다 끊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그 일에만 파고들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세속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세속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한다. 나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학문에만 파고들고 싶을 때가 많다. 근데 스트릭랜드는 그 갈망이 남들보다 훨씬 커서, 결국 그걸 실제로 실천에 옮기고 자신에게 짐이 된다고 여긴 모든 걸 끊어냈다. 그 부분에서 나는 그가 존경스러웠고,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릭랜드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기만의 그림 세계에 갇혀 끊임없이 예술을 고뇌하며 그림을 그린다. 보통 뭔가를 시작하면 주변의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 근데 스트릭랜드는 그런 시선이나 평가 따위 전혀 필요 없다는 듯 자기만의 예술혼을 묵묵히 불태운다. 게다가 그 시대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림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겼던 것과 달리, 그는 그림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그 점에서 그의 예술 세계와 정신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 역시 본받고 싶었다. 자기 배를 굶주려가면서까지 예술에만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인물은 스트로브였다. 그는 스트릭랜드가 자기 아내의 나체를 그렸다는 사실에 격분해서 그 그림을 주걱으로 찢으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천재적인 예술혼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한참을 그 그림에 몰두하고 만다. 스트릭랜드가 죽일 듯이 미웠으면서도 결국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게 되는 이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때 스트로브가 느꼈을 비참함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분노보다 그 예술성에 대한 존중과 열등감, 그리고 결국은 인정하는 마음이 더 컸던 거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스트로브는 순순히 그를 인정했고, 심지어 같이 네덜란드로 가자는 제안까지 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모습이 정말 본받고 싶었다. 다들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비웃을 때, 스트로브만이 유일하게 그 재능을 먼저 알아본 사람이었다. (물론 나체를 그렸다는 사실은 좀… 이해가 안 가긴 했다)
소설 후반부, 스트릭랜드가 나병에 걸려 육신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대목이 가장 강렬했다. 그는 평생 자기 예술을 방해할 만한 것들을 하나하나 피해왔는데, 정작 육체라는 가장 근원적인 굴레에서만큼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속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타히티에서 나병으로 육신이 무너져가는 그 과정 속에서야 비로소 그의 영혼만이 오롯이 남아 예술의 정점을 완성한다. 몸이 부서질수록 오히려 그 안의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이 역설이 소름 끼쳤다.
생각해보면 그는 평생 자기 자신과 싸워온 사람이었다. 명예와도, 가난과도, 주변의 조롱과도 싸웠지만, 사실 가장 끝까지 그를 붙잡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자기 몸이었다. 배고픔을 견디고, 병을 견디고, 결국 시력마저 잃어가면서도 그는 그림을 놓지 않았다. 육체가 무너지는 속도와 그의 예술이 완성되어가는 속도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게, 다시 생각해도 소름 돋는 지점이었다. 몸이 그를 배신할수록 오히려 그가 그토록 옭아매려 했던 예술은 완전한 형태로 그를 찾아왔다. 자기만의 예술적 가치관을 오로지 자신과의 사투만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가, 결국 그 육신의 완전한 소멸과 함께 완성됐다는 것. 어쩌면 그는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평생 쫓던 것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도 요즘 뭔가를 배우고 익히다 보면 비슷한 감각을 느낄 때가 있다. 어떤 걸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감을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다시 도망가버리고, 붙잡으려 손을 뻗으면 또 그만큼 빠져나간다. 그만큼 뭔가를 진짜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끝없이 고민하고 매달려야 하는 일이라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그 외롭고 고독한 사투 끝에 결국 자기만의 예술을 완전히 창조해낸다. 그가 완성한 마지막 벽화를 본 의사가, 마치 세상이 처음 만들어지던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평생 육체가 자신의 정신을 가둬왔다고 믿었던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그 틀을 완전히 깨고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는 순간에 도달한 거였다.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걸 직감했는지, 이미 눈이 멀어 볼 수도 없는 그 그림을 하염없이 응시하다가 결국 아내 아타에게 태워달라고 명한다. 세속적으로 평가받고 값이 매겨지는 게 싫었던 거다. 자신이 평생 추구하던 걸 마침내 완벽하게 이뤄낸 그 작품을, 그는 오히려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의 예술관을 내가 감히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평생을 걸고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흔들어놨다.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부와 명예를 다 포기하고, 오로지 자기 안의 가치에만 몰두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러면서 겨우 이런저런 글 몇 편을 쓴다고 스스로를 뭔가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쓰는 일에 가치를 둔다고 말하려면, 스트릭랜드처럼 끝없이 고민하고 몰두해야 하는데, 정작 그가 쏟은 노력의 십분의 일도 들이지 않으면서 왜 실력이 늘지 않느냐고 투정 부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의 예술관을 내가 감히 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평생을 걸고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흔들어놨다.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 부와 명예를 다 포기하고, 오로지 자기 안의 가치에만 몰두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겨우 이런저런 글 몇 편을 쓴다고 스스로를 뭔가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쓰는 일에 가치를 둔다고 말하려면 스트릭랜드처럼 끝없이 고민하고 몰두해야 할 텐데, 정작 그가 쏟은 노력의 십분의 일도 들이지 않으면서 왜 실력이 늘지 않느냐고 투정 부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스트릭랜드는 한평생을 바쳐서야 비로소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그리던 걸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뭔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결과부터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조바심을 내면서, 조금만 안 풀려도 이건 나랑 안 맞나 하고 쉽게 흔들렸다. 근데 스트릭랜드에게 그런 조바심은 애초에 없어 보였다. 그는 그저 매일 캔버스 앞에 앉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 같았다. 그러니 나도 당장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기보다, 그저 몰두와 고뇌를 반복하고 지속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새기게 됐다. 그렇게 몇 번이고 다시 매달리고 고치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스트릭랜드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언젠가 그 근처 어딘가에는 나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달과 6펜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개를 들면 비로소 보이는 세계, 북극성과 남십자성, 흩뿌려진 은하수가 존재함을 말한다. 달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도록 하는 장치일 뿐.
끝내 붙들지 못할 달을 좇는 이가 호주머니 안에 은화 움켜쥔 자보다 나은가. 두 세계가 엄연히 공존한다 믿으면서도 앞의 것은 귀하고 뒤의 것을 천하다고 내심 생각한다. 소설 가운데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한 이의 인격을 짓밟던 성공한 이가 그랬듯, 나는 그 반대편에 서서 살고 죽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하찮은 이들이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돈을 벌고 가족을 꾸리고 명예와 권력을 얻는 일이 어찌 하찮을까만, 자꾸 달을 보는 망원경으로 옆 사람을 비추려는 고약한 태도를 드러내고 만다.
달의 세계와 6펜스의 세계 사이에서 나의 세계를 돌아본다. 달도 6펜스도 아닌 나의 세계, 내가 찾아 감당할 것이 오로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