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9권.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내리며 아프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의 작품. 독재 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작가를 투옥되게 한 문제작이다.
도서 DB 제공: 알라딘
이 책 어때요?
Q&A
이 책의 한줄평
0
게시물
1
이 책이 담긴 책장
오늘 독서, 어떻게 시작해 볼까요?
요약
피의 꽃잎들 내용 요약 🌍✊
‘피의 꽃잎들’은 케냐 출신의 탈식민주의 문학 거장 응구기 와 시옹오(Ngũgĩ wa Thiong'o)가 1977년 출간한 장편소설로, 2015년 10월 8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9번으로 왕은철 번역으로 국내 출간되었다(ISBN: 9788937463396). 이 작품은 케냐의 독립 이후 신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고발하며, 작가를 투옥시킨 문제작으로 유명하다. 1938년 영국 식민지 케냐의 기쿠유족 가정에서 태어난 응구기는 마우마우 항쟁의 격동기를 겪으며, 식민지와 독립 이후의
[독서 후 코멘트]
# 20세기 아프리카 내 신식민주의의 폐해를 보여주는 역사 + 추리 소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피의 꽃잎들』은 제국주의의 광풍이 휩쓸고 간 아프리카 대륙이 어떻게 신식민주의의 기형적 자본주의로 재편되었는지를 고발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케냐의 작은 농촌 마을 '일모로그'가 투기 자본이 침투한 신도시 '뉴 일모로그'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정·재계 거물 3인의 방화 살인 사건을 추리극의 형태로 펼쳐낸다.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장르적 흡입력을 주면서도, 텍스트의 심층에 백인 지배자들의 자리를 고스란히 꿰찬 채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흑인 신흥 엘리트 계급의 변절과 탐욕을 담았다. 독립 후 케냐는 물리적 식민 지배는 종식되었으나 자본과 권력, 종교가 결탁해 민중의 정신과 육체를 더욱 교묘하게 착취하는 신식민주의의 비극적 굴레에 얽매였다.
# 희망을 나타내는 ‘피의 역설’
하지만 작품이 짙은 허무주의로 침잠하지 않는 이유는 제목이 함의하는 역설에 있다. 짓밟히고 꺾이면서도 대지에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붉게 타오르는 '피의 꽃잎들'은 어떤 억압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는 케냐 민중의 생명력과 꺾이지 않는 투쟁의 불씨를 상징한다. 저자는 소설에 아프리카 구전 문학과 고유의 문체, 풍자를 융합했다. 아프리카 저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의 배경은 외세의 수탈과 기형적 근대화를 거친 한국의 현대사와도 맞닿은 점이 있어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발췌한 책 속 문장]
p25 “여기 젊은이들은 우리를 떠났소. 반짝이는 쇠가 그들을 불렀소. 그들은 떠나고 젊은 여자들만 이따금 돌아와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긴다오. 땅을 파 먹고살다가 이미 늙어버린 할머니에게 말이오.”
=>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낳은 이농 현상과 전통적 혈연 공동체의 붕괴를 보여준다.
p34 배가 나오고 몸집이 큰 네 번째 남자가 볼을 치지 못하고 계속 골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세 명의 아프리카 인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찢어진 옷을 입은 남자 캐디들이 골프채를 메고 공을 든 채 적당한 거리에 서 있었다.
=> 피부색이 같다는 민족적 동질성은 계급과 자본의 논리 앞에서 부서진다. 독립 이후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한 흑인 엘리트들이 과거 백인 식민 지배자들의 오만한 사치를 완벽하게 답습하며 동족을 하대하는 씁쓸한 풍경을 나타내는 문장이다.
p38 그들에겐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주님에 대한 복종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그를 이제키엘리 형제, 그리스도 안의 형제라고 불렀다. 그들은 일이 끝나면 뜰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감사를 드렸다. 물론 급료를 올려 달라고 선동하거나 농장에 문제를 일으키는 등 악마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도 가끔 있었지만, 그들은 해고당했다.
=> 제국주의와 함께 유입된 서구의 종교가 어떻게 피지배층의 각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지 찌르는 대목이다. '주님에 대한 복종'이라는 명분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마저 '악마적 선동'으로 매도하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적 통제 수단으로 기능했다.
p39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가서 자신을 하느님한테 바치는 속죄의 의식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그는 성냥 한 통을 훔치고 풀과 마른 쇠똥을 모아 그가 하느님한테 죄를 저지른, 카미리소애 있는 아미나의 집 모형을 만들고 불을 붙였다. 불길을 바라보니 자신이 정말로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왜곡된 종교적 신념이 빚어낸 개인의 광기가 방화라는 파괴적 행위로 이어지는 후반 결말에 대한 복선이 이미 초반에 있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게 하는 독서 되새김의 장점.
p42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자, 안는 반은 엄격하고 반은 꾸짖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 독선적이고 성경만 읽고 날마다 기도만 하는 탓에,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아내의 얼굴엔, 감각적인 것이 모두 사라지고 이제 영혼의 차가운 빛만 남아 있었다.
=> 광신적인 믿음은 사람의 관상까지 변하게 한다.
p88 “그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하더군요. 그러고는 우스운 짓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내 아버지만큼이나 나이가 많다면서요. 그리고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했어요.”
=> 도덕성을 보증해야 할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이 타락과 위선을 방어하는 면죄부로 전락했다. 신앙적 우월성이 오히려 약자를 향한 착취를 은폐하는 기만으로 소비되는 신식민지 사회의 윤리적 붕괴를 고발하고 있다.
p121 그녀는 유럽인 농장에서도 일을 해야 했고, 자기 땅에서도 일을 해야 했으며, 집 안도 깨끗하고 화목하게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키운 것에 대해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보통의 경우, 남편이 그것을 가져다가 그들의 지주인 유럽인 농부에게 팔았다. 지주는 자기 마음대로 값을 매겼다.
=> 20세기 중반 케냐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라는 가혹한 삼중의 착취 사슬 밑바닥에서 고통받았다. 백인 지주에게 억압받는 피식민지 남성조차 가정 내에서는 여성을 수탈하는 지배자로 군림했다.
p140 지금 우리는 기찬디, 리퉁구, 응야티티의 시인들과 극작가들에 의해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전설에 의존할 뿐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연구가 그것을 보완해 주고, 지난 수세기에 걸친 식민주의 모험가들, 특히 19세기 모험가들이 남긴 기록의 행간에서 조금씩 그것을 찾아낼 뿐이다.
=> 식민 지배는 물리적 영토의 침탈을 넘어 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기억마저 철저히 말살했다. 약소국이었던 케냐는 침략자들의 기록을 더듬어 파편화된 역사를 복원해야만 했다.
p142 목자들과 농부들은 자기들이 주인이었고 자기들이 통치했던 땅에서 신분증을 갖고 다니는 노동자로 전락했다.
=> 대지와 함께하던 이들은 시스템에 등록된 '관리 대상'이자 부속품 같은 노동자로 전락했다.
p378 수많은 자극과 수많은 동기에서 촉발된 지극히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역사를 바꾸고, 영혼이 영원한 괴로움과 상실, 죄의식과 잔인함에 시달리도록 저주를 하고, 때로는 모든 이해력을 넘어서는 사랑을 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 무슨 계획이나 법칙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결국 무수한 개인들의 욕망과 우연이 교차한 결과임을 말한 문장이다. 지구의 역사는 수많은 나비효과와 함께한다.
p384 유럽의 산업혁명을 창시한 유명인들에 견줄 만한 좋은 예라고 했다. 그들이 우리의 크루프이고 록펠러이며 포드라고 했다.
=> 예시로 든 기업인들이 악덕 경영으로 명성(?)을 떨친 사람들임을 고려하면, 피부색만 달라질 뿐 약자의 피를 쥐어짜 부를 축적하는 자본의 무자비한 포식성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복제되었지 않았는가.
p393 학식 있는 역사가들의 눈에 식민주의 이전의 케냐 역사는 방랑벽과 의미 없는 전쟁의 역사였다. 지식층들은 결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의미를 직시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오직, 폭력적인 저항의 행동들을 섬뜩한 살인으로 묘사할 때뿐이었다.
=> 그들의 과거 역사가 사라지는 건, 신식민주의에 물든 지식인들의 탓도 크다. 독립 투쟁을 야만적 살인으로 격하하고 식민 지배를 근대화로 포장하는 지식층의 비겁함이 저자가 꼬집은 ‘정신적 식민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p547 뉴 케냐였다. 뉴 일모로그였다. 공짜는 아무것도 없었다.
=> 전통 공동체의 일모로그는 모든 것이 화폐 가치로 환산되는 ‘뉴’ 일모로그로 변했다.
p549 또 1실링, 2실링, 5실링이 나가는 술을 다양한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서 사람들이 그안에 든 독을 호주머니에 수비게 갖고 다닐 수 있게 했다.
=> 술은 노동자들에게 봉급을 안겨주면서도, 그들의 돈과 건강을 잡아먹는 족쇄가 되었다. 접근성이 좋은 술은 노동자들이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체제 유지 수단이 되었다.
p555 “제 생각에 이 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 같아요. 자신들의 비참한 상태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 그럼에도 술은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술을 싫어하는 본인으로선 지긋지긋할 따름.
p597 나중에 카레가는 모든 운동이 신도들에게 십일조를 내게 해서 많은 돈을 거둔 미국 교회들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의 일부가 나중에 하람비 교회 건설 운동에 대한 미국 교회의 기부의 일환으로 되갚아질 예정이었다.
=> 구호와 기부를 빙자한 서구 교회의 자본은 개발도상국의 정신적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투자 행위였다. 대한민국 개신교의 극우주의 행태의 기원은 미국 개신교임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가.
p647 그것은 그가, 즉 무니라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법에 적극적으로 복종하여 그것을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지상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조롱하는 매음굴을 불살라 버리라는 명령이 그에게 내려진 것이었다.
=> 무니라는 자신의 끔찍한 방화 살인을 '신의 명령'이자 '법'으로 정당화했다.
p652 결국 관광 산업은 이 나라의 최대 산업 중 하나였다.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곳이 어디 있던가. 경찰관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안정과 법과 질서가 유지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든 산업과 외국인의 투자 성공 여부가 달려 있었다.
=> 공권력이 자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의 구미'를 맞추기 위해 작동했다. 기형적인 산업 구조와, 그 체제를 지켜야 하는 종복의 기괴함.
p656 어머니만이 아니라 모든 이웃들이 작당을 해서 케냐에 있는 돈의 자기 몫을 갖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완자뿐이라고 했다. 갑자기, 지폐를 꺼내던 그녀의 손이 굳어 버렸다.
=> 배금주의의 독기가 천륜과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돈에 대한 집착은 자녀로서 마지막 정마저 사라지게 했다.
p673 작가는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으로 태어나 그 역사를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가 어떤 역사 속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p676 그가 한국 집권층의 타락을 풍자한 김지하의 「오적」에서 영감을 얻어 『십자가 위의 악마』를 쓰게 된 것은 이듬해까지 이어진 감옥 생활을 통해서였다.
=>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후에 고 김지하 시인이 한국 집권층에 의탁한 사실을 작가가 알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p677 그런데 ‘피의 꽃잎들’이라는 제목은 궁극적으로, 벌레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결국에는 그것에 맞서 싸우는 용기와 기개를 갖게 되는 민중의 생명력과 저항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p680 흥미로운 것은 살인 사건의 전모를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케냐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소설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 자체가 식민 지배와 자본의 구조적 악을 규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역사 소설과 추리 소설의 성격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p680 스토리는 일모르그라는 작은 농촌 마을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모로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케냐라는 나라의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p681 작가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눈을 뜨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 우화, 구전의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 가며 감동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이 왜 케냐, 아니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인지를 증명해 보인다.
=>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아프리카 문화권에 많을 텐데, 지금까지도 큰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p681 현실에 대한 분노나 정의에 대한 신념이 때로는 예술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오히려 두 가지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인다.
=> 시대 상황을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작가에겐 큰 만족을 줄 수 있지만, 독자에겐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p682 그리고 전에도 이 소설을 읽었지만 번역을 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읽으며, 케냐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이 우리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은 우리의 근대사를 돌아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폐해, 지배 수단으로 사용되는 개신교 등 우리나라의 근대사와 겹치는 점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