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변학에서 시문학을 거쳐 삶의 지혜로 이어지는 '고양이 액체설'은 물질과 욕망의 무상함을 일깨우는 한편으로, 충만한 현재의 긍정에 닿으려 한다. 고체와 액체와 기체의 헛된 구분으로부터 벗어나 변치 않는 본질과 마침내 닥쳐올 시간의 세례라는 숙명을 긍정할 때 남는 것은 바로 지금의 삶인 때문이겠다. 그리하여 '금보다 먼저 당신이 액화하고 기화되어 사라질 것'이란 경고는 '우리집 고양이는 액체가 아니라 기체'라는 우김이 되었다가, 마침내는 '왠지 몸이 가볍고 / 늦은 봄밤이 더욱 향기롭다'는 현재에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유달리 동물과 식물, 인간 아닌 살아 있는 존재를 많이 다루는 시인이다. 타인을 넘어 동물과 식물에게 저의 인간적 인식을 투영하는 시인의 작법을 누군가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지난 시대 해묵은 관점이자 관념의 반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길고양이가 고독을 느끼고 처리하는지, 악어가 붉은 태양을 즐기는지, 치타의 눈물자국이 그 삶의 방식의 증명인지를 인간은 끝내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인은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저 아닌 생명체에게 제 감상을 투영하길 거듭한다. 그와 같은 태도가 낡고 늙게 보이는 순간이 적지 않으나 또 그대로 시인이 어떤 사람이며 작가인지를 확인하게도 한다. 시를 읽는단 건 시인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고양이 액체설>은 그렇게 시인 강서일의 충실한 자기표현이 된다. 그 만남을 즐기면 될 일이다.